28년 만의 엔화 매수 공조 개입, 일본에 정책 전환 압박
맥아더의 콘 파이프
황거 동쪽, 히비야 해자沿에 서 있는 다이이치생명보험 본사 빌딩은 전쟁 종결 후 GHQ가 접수했다. 6층에는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원수의 집무실이 당시 분위기를 남긴 채 보존돼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맥아더가 애용한 콘 파이프의 복제품이다. 알을 제거한 옥수수 속대를 말려 안쪽을 파내 만든 이 파이프는 나무제보다 크고 무거우며 거친 멋이 있다. 맥아더는 사진에 잘 잡히는 점을 의식해 긴 막대를 전장에서는 지시봉처럼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1945년 8월 30일에는 이 콘 파이프를 문 채 아쓰기 비행장에 내려 일본의 패전을 선명하게 각인시켰다.
서머스가 압박한 대응
그로부터 반세기 남짓 뒤인 1998년 6월, 일본은 부실채권 문제의 심각화로 금융위기 한복판에 있었다. 외환시장에서는 정부에 금융 안정화의 근본 대책을 요구하는 엔화 매도가 거세졌고, 97년 6월 달러당 110엔대였던 엔화 환율은 1년 만에 146엔대로 떨어졌다. 전환점은 98년 6월 17일이었다. 미일 양국이 엔 매수, 달러 매도 공조 개입에 나서 끝없이 이어지던 엔저를 멈춰 세웠다.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는 클린턴 미 대통령과 강한 엔화와 시장 안정이 아시아와 세계 경제에 중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했고, 일본은 부실채권 처리를 서두르겠다고 약속했다. 다음 날 일본을 찾은 인물은 당시 43세였던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이었다. 그는 올해 2월 에프스타인 문제를 계기로 하버드대를 떠났지만, 이례적인 젊은 나이에 종신재직권 테뉴어를 얻은 천재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무뚝뚝한 태도는 종종 오만하고 거만하다는 인상을 줬다.
일본 측 상대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재무관이었지만 서머스는 서열을 개의치 않았다. 오부치 게이조 외상, 마츠나가 미쓰요시 대장상, 하야미 유 일본은행 총재, 미야자와 기이치 등과 분 단위로 면담하며 일본은 행동해야 한다고 거듭 압박했다. 그 결과 부실채권의 조기 처리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다. 방일 약 한 달 뒤 서머스는 하버드대로부터 기념품을 받는다. 안에는 맥아더의 상징이었던 콘 파이프가 들어 있었고, 일본 체류 중의 행보가 패전국 일본의 최고 권력자를 연상시켰다는 다소 냉소적인 해석도 있었다.
28년 만의 공조 개입
종전 81년의 여름, 엔화 환율은 달러당 155엔, 160엔으로 수준을 낮췄다. 그때마다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과 미무라 아츠시 재무관이 경고를 내고 시장에서 엔 매수 개입을 반복했지만, 엔저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7월 말에는 미국과의 공조 개입에 나섰다. 미일이 함께 엔화를 사들이며 받친 것은 서머스가 일본을 찾은 1998년 이후 28년 만이었다.
다만 이를 미일 통화동맹의 완성형으로 보기는 이르다. 엔화 하락을 스스로 억제하지 못해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는 구도는 98년과 겹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일 기자들에게 취임 후 다룬 아르헨티나 페소 매수 환시 개입,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 개입, 인텔에 대한 지분 투자에 따른 구제를 거론하며 이번 엔화 매수 공조 개입도 같은 선상에서 언급했다. 일본이 엔저를 이유로 도움을 요청해 왔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이 금전적 이익을 얻는 거래라고 설명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도 4일 본지 인터뷰에서 97~98년 통화위기를 바탕으로 많은 아시아 통화가 엔화와 연동돼 있다며 개입 배경을 밝혔다. 또 CNBC 인터뷰에서는 일본이 앞으로도 적절한 정책을 시행하면 엔화는 보다 정상적인 균형 가격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입으로 벌어들인 시간을 이용해 일본에 정책 대응을 압박한 셈이다.
28년 전에도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부실채권 처리의 가속이 시급했지만 주택금융전문회사 처리를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데 대한 강한 반발로 하시모토 정권은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후 일본장기신용은행 파산 등을 거치며 디플레이션 불황은 더 깊어졌다. 서머스가 당시 입에 올린 '기회의 창'은 지금도 무겁다. 정부와 여당도 금리 정상화 지연과 재정 규율 완화가 엔 매도를 부르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공조 개입으로 열린 시간을 정책 전환에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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