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162엔대로 하락 39년 반 만의 최저치로 엔저 관측 강화
엔화 환율이 달러당 162엔대로 하락해 1986년 12월 이후 39년 반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견조한 미국 경제를 배경으로 달러 강세 압력이 강해지고 정부·일본은행의 엔화 매수 개입에 대한 경계도 옅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엔저가 더 진행될 것이라는 견해가 확산하고 있다.
엔화 매도가 한층 가속
미국 시티그룹은 29일 공개한 투자전략에서 엔화 매수·달러 매도 거래를 청산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세계 주요 금융기관들이 엔저·달러 강세를 예상하는 가운데, 엔화 강세 입장을 취해온 이 회사도 태도를 바꾼 셈이다.
30일 도쿄시장에서 엔화는 162엔대까지 팔리며 1986년 12월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다. 당시에는 전년의 플라자 합의 이후 엔화 강세가 진행돼, 합의 전 240엔이던 환율이 87년 말에는 120엔까지 올랐다.
리소나은행의 나카자토 신스케 클라이언트매니저는 162엔까지의 급락에 대해 '개입 경계감 등에 눌려 있던 엔 매도·달러 매수의 마그마가 분출했다'고 말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의 에자와 히로후쿠 시장본부장은 161엔95전과 162엔 부근에 옵션 거래가 많이 쌓여 있었다고 지적했다. 설정 수준을 넘겨 엔저가 진행되면서 손실 회피를 위한 엔 매도·달러 매수도 커졌다.
미쓰비시UFJ신탁은행 자금외환부의 오카다 유스케 수석조사역은 매도와 매수가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수입기업의 달러 매수 수요가 엔저 가속으로 이어졌다고 본다. 월말로 기업의 환거래가 늘어나기 쉬운 시기였던 점도 변동을 키웠다.
강한 달러의 재평가
시장 전체로는 달러 매수 압력이 강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을 계기로 3월 이후에는 안전자산인 달러로 자금을 옮기는 '위기 시 달러 매수'가 확산했다. 달러는 유로와 영국 파운드 등 주요 통화에 대해 전반적으로 상승하며 독주 강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투 종결을 위한 협의가 진전되면 달러 매수의 기세는 약해질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에서는 오히려 달러 강세의 재도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 HSBC는 지정학적 리스크의 최악 국면이 지나가고 있는 한편 초점은 달러 강세의 지속성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본다. 영국 캐피털 이코노믹스도 최소한 2026년 하반기까지는 미국 경기 개선과 금리 인상에 우호적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RB)가 시장을 지지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놨다.
미국 고용과 경기체감 등 최근 경제지표의 강세도 달러를 떠받치고 있다. 7월 2일에는 6월 미국 고용통계 발표를 앞두고 있지만, 시장은 결과를 기다리는 자세를 강화하기는커녕 엔 매도·달러 매수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증시 강세도 엔저 요인
한편 엔 매도를 부추기는 재료도 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것은 역사적 고점권에 있는 일본 증시와 엔저의 관계다. 해외 투자자가 일본 주식을 살 때는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기 위해 엔 매도를 동반한 헤지를 걸기도 한다. 주가 상승에 따라 헤지 비율을 조정하는 움직임이 나오면 엔 매도가 불어나 엔저의 한 요인이 된다.
역사적 엔저 수준에 있지만 시장에서 하락세가 일단락됐다는 견해는 퍼지지 않고 있다. SMBC닛코증권의 마루야마 린토 수석 금리·환율 전략가는 기본 방침으로 엔 매도·달러 매수를 유지할 것을 권한다.
정부·일본은행의 엔화 매수 개입에 대한 경계감이 약해지고 있는 점도 배경이다. 가타야마 사쓰키 재무상은 30일 각의 후 회견에서 엔저에 대해 '필요에 따라 언제든 적절히 대응하겠다'며 '단호한 조치가 포함된다는 점은 지난번 미일 재무장관 온라인 회의에서도 확인했다'고 말했다.
다만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의 스즈키 고시 수석 외환전략가는 이번 발언이 곧바로 개입에 나선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는 받아들임이 확산했다고 본다. 개입의 계기나 분수령도 보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의 외환 딜러들 사이에서는 당분간 개입이 없다면 달러 강세를 배경으로 엔저가 서서히 진행돼 165엔 안팎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경계가 강하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로빈 브룩스도 29일 X(옛 트위터)에 170엔 또는 그 이상까지 엔저 여지가 있다고 올렸다.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엔화 강세로 돌아설 재료가 부족하다는 견해가 여전히 우세하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엔화 환율은 하단을 탐색하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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